온갖 기록
영화 옥자(Okja) : 한 사람을 이루는 다양한 레이어의 욕구와 욕망들 본문
기다리던 영화였지만 궁금하지는 않은 영화였다. 그게 참 묘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이상하게도 그 즈음은 '영화'를 보고 싶었지 특별히 '어떤'영화를 보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 시기였다. 워낙 생각할 게 많던 때라 그랬던 것 같다.
준비하고 있던 모든 잡 인터뷰가 끝나고, 마음이 많이 허했다. 잡생각이 마구마구 찾아오기에 딱 좋은 상태였다. 그게 무서워서 뭐라도 해야겠다 싶었다. 하지만 워낙 술도 안마시고 시끄러운 곳도 싫어하는 편이라 뭘 해야 기분을 내며 놀 수 있을지 전혀 모르겠더라. 그래서 그냥 하던대로 친구와 영화관에 가기로 했다. 그리고 보고 싶었던 영화 후보들 중 하나였던 옥자를 예매하기 위해 포털에 검색했다.
나는 아트나인을 참 좋아한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들, 혹은 기대하지 않았지만 마음에 닿았던 영화들을 자주 마주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내가 사는 곳과 가장 가까운 독립영화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트나인에서 옥자는 정말 완전 매진이었다. 넷플릭스와 영화관 동시개봉 이슈때문에 상영관 수가 애초에 적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그 정도 일줄은 몰랐다. 그래서 처음으로 아트하우스 모모에 가게 됐다. 옥자 덕분에 더 많은 사람들이 독립영화관을 찾게 되었다는, 옥자 개봉 이슈의 긍정적인 영향을 이야기하는 기사를 본 적이 있었는데 그 수혜자가 나구나, 하고 생각했다.
영화는 생각보다 좋았다. 무엇보다 영화가 전반적으로 유쾌해서 내가 당시에 필요했던 에너지를 충분히 공급받았다. 그리고 이전 봉준호 감독의 영화들을 떠올리게 하는 여럿 장면들이 인상적이어서 좋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좋았던 건, 옥자를 둘러싼 여러 인물들의 모습이 꼭 나와 닮아서 위로받을 수 있었다는 점이었다.
요새 내 안에 서로 충돌하는 여러 모습들이 공존하고 있다는 생각을 종종하게 된다. 한 가지 주제에 대해 내 생각을 뚜렷하게 이야기하다가도, 곧 바뀐 주제에 대한 또 다른 내 생각을 드러내다보면 방금 전 내 입에서 나온 나의 생각과 그것이 같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된다. 그게 참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분명 두 가지 모두 나의 생각, 나의 이야기인데, 그리고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왜 그렇게 느끼는지 또렷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데도 그 둘은 서로 달랐다.
옥자를 찾기위해 고군분투하는 미자, 동물학대를 반대하며 미자를 돕는 사람들, 슈퍼돼지를 양산하는 사람들. 모두 각자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모험을 감행하는 뚜렷한 인물들이지만 단순히 선과 악으로 나뉠 수 없는 각자의 개인적인 행동 동기들을 마음에 품고 있다. 폴 다노가 연기한 제이는 폭력에 반대하는 강성 인물이지만 자신이 열심히 지키고 있는 신념을 무시한 케이를 때리는 데 서슴이 없고, 옥자를 지키기 위해 미국까지 날아간 미자는 생명사랑의 상징같은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돼지들의 비운에 마음 아파하기 보다는 황금돼지를 미끼로 사용해 옥자를 구출하는데 성공한다. 부모없이 자란 미자에게 가족의 정을 느끼게 해 준 옥자였기에 소중했던 것이 뿐이었던 거다. 틸다 스윈튼이 연기한 낸시는 회사의 성공적인 경영과 세계기아문제 해결을 간판으로 내걸며 살지만, 사실 그녀를 추동하는 것은 마음 속 깊이 자리잡고 있는 아버지와 언니에 대한 열등감이다.
한 사람이 뱉는 말들과 보이는 행동들은 같은 사람에게서 나왔기에 하나의 맥락을 이룰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 맥락이 뚜렷할수록 멋있는 거다, 하고 생각하며 지내왔다. 그런데 요새 내가 느끼는 것들이나 영화 옥자 속의 인물들을 보면 꼭 그런것 같지만도 않다. 한 사람은 다양한 레이어의 욕구와 욕망들로 이루어져있고, 그저 그것들을 차곡차곡 쌓아서 잘 정리하거나 혹은 언제든 한 가지를 꺼내 쓸 수 있게 우선 순위를 정해둔 것 뿐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그런지 영화 옥자 속의 인물들을 보면서, 왠지 모를 위로를 받았다. 그리고 옥자가 귀여워서 미소 한 가득으로 영화를 볼 수 있어서 기분도 좋았다. 왜 아무도 옥자가 별로라고 말하지 않느냐고 한탄하는 평론을 읽기도 했지만, 뭐 옥자는 내 마음에는 괜찮은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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