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갖 기록
안전가옥 : 제가 지켜보고 있습니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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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안전가옥을 써야 할 시기가 다가올 때마다 아니, 벌써 한 달이? 하고 생각한다. 새삼스럽게 또 한 달이 흘렀다. 이번엔 또 어떤 안전가옥의 이야기를, 그리고 나의 이야기를 쓰면 좋을까 고민하면서 지난 한 달 간 안전가옥에 있었던 일들을 곱씹는다. 4주에 걸쳐 진행된 스토리디자인 워크샵도, 단편영화 <다희 다이> GV도, 직접 만든 칠판을 통해 라이브러리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시작한 것도, 시즌패스 멤버들과 함께 와인잔을 기울이며 색다른 안전가옥에서 색다른 시간을 가진 것도 모두 11월의 이야기다.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벌써 한 달이 흘렀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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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면 안전가옥을 오고 가는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리고 그 사람들을 먼 발치에서 지켜보며 어떤 일을 하는 분일까, 어떤 책을 좋아하실까, 하고 혼자 궁금해하다 넌지시 건넨 한 마디 두 마디에 가까워지는 마음들을 생각한다. 얼굴을 익히며 자연스레 인사하는 사이가 되고, 어느 날엔 오지 않은 손님의 안부를 혼자 속으로 묻는다. 오랜만에 방문한 손님이 사다 준 간식에 괜스레 고마운 마음이 일기도 한다.
라이브러리를 돌아다니며 책을 정리하다가 자주 비어있는 자리 하나가 또 비어있는 것을 발견하면, 사람들이 이 책을 즐겨 보는구나 하고 생각한다. 페이스메이커 칠판 앞에 걸음을 멈추고 뤽과 내가 손글씨로 쓴 이야기를 읽는 손님을 볼 때마다 더 많이 읽고 더 많이 추천하고 싶다는 마음을 먹는다. 가끔은 사람들의 개인 SNS 계정에 올라온 안전가옥 이야기를 찾아보거나, 뉴스레터에 담긴 이야기 중 어떤 링크를 가장 많이 눌러보았는지 살펴보면서 사람들의 생각을 추측해보기도 한다.
워크샵에 참여해 안전가옥에서 새로운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지켜보기도 한다. 공모전에 낼 소설의 소개서를 보여주며 두 가지 선택지 중에 더 나은 것을 골라달라는 작가님의 부탁에 조심스레 내 생각을 이야기해주기도 하고, 스튜디오에서 글을 쓰다 저녁을 먹으러 나온 작가님이 괜찮은 밥집을 물으면 주말에는 요 근처에 문 여는 곳이 별로 없긴 한데,라는 사족을 붙이면서 운영멤버들이 자주 가는 식당을 추천해주기도 한다. 하루를 마무리하며 청소를 하다가 올려다 본 2층 스튜디오 창문을 통해 작가님과 눈이 마주쳐 웃음 짓는 일도 은근 로맨틱하다. 이렇게 작가님들의 생활과 고민, 생각 흐름을 엿보다 보면 글을 쓰는 사람들의 세계에 전보다 한 발짝 가까워지는 기분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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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안전가옥에 함께 하게 되었을 때 뤽에게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작가도, 장르문학 헤비 매니아도 아닌 내가 어떤 마음과 태도로 이곳에 오는 분들을 대하면 좋을지 잘 모르겠다고. 뤽은 그런 나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전가옥은 작가들이 좋은 이야기를 만들 수 있도록 돕고 싶어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길 바란다고 이야기해주었다. 좋은 이야기의 탄생을 돕는 조력자 안전가옥. 그때부터 어떤 조력자가 좋은 조력자인지 생각하기 시작한 것 같다.
아직까지 나만의 명확한 답은 찾지 못했고, 사실 애초부터 정답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 문제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 나는 작가들이 만들어 낼 좋은 이야기가 가지고 있는 힘을 믿고, 안전가옥을 찾는 작가들이 그런 일을 잘 해낼 수 있기를 바라며, 사람들이 서로 모여있을 때 그럴 수 있는 시너지가 나온다고 믿는다. 그리고 나는 이런 믿음과 응원의 시선으로 늘 안전가옥 멤버들과 함께하는 관찰자이고 싶다. 그것이 좋은 조력자가 되는 출발점이라고 생각하며 서로가 서로를 그렇게 대해주는 곳이 좋은 커뮤니티가 아닐까 하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언제나 몰래, 은근슬쩍, 가끔은 대놓고 안전가옥을 찾는 사람들의 생각과 마음을 궁금해하며, 묻고, 듣는다.
라이브러리 컨시어지에 혼자 앉아 있으면 외롭거나 심심하지 않냐는 질문을 종종 받곤 하는데, 그렇지 않다고 이야기하고 싶어 시작한 글이 그만 이렇게 길어지고 말았다. 그저 저는 여러분을 지켜보고 신기해하고 흐뭇해하느라 늘 시간 가는 줄 모른답니다, 허허, 그러니 언제든 저에게 반갑게 인사해주세요, 하고 말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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