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갖 기록
아무 말, 아무 글 : 7. 지난 말들과 오늘의 말 본문
건강한 생각을 유지한다는 건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런 종류의 생각들은 스스로 떠오르는 것이 아니라 구태여 내가 붙잡고 있어야만 하는 것들이다. 그 사실이 한 동안 억울하게 느껴지곤 했다. 행복, 안정, 건강. 그러한 상태와 관계들. 이상적이라고 여겨지는 모든 것들은 그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노력해야 얻을 수 있는 것이라는 사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을 내 의지와 상관없이 떠올려야만 했던 순간들. 그 앞에서 나는 무척이나 무기력했다.
원서를 쓰고, 시험을 보고, 면접을 보고, 결과를 통보받았다. 여전히 불안정하지만 이상하리만치 나는 전에 없이 건강하다. 다르게 말하면 건강한 생각을 잘 붙잡고 있다. 불안한 상황에 대한 반작용 같은 걸까, 하고도 생각해봤지만 그런 것 치고는 너무 건강하다. 어쩌면 나는 정말 건강해진 걸지도 몰라. 여기까지 번진 생각이 어색하고 반가웠다.
취업을 준비하면서 지금껏 외면하고 쌓아뒀던, 스스로에 대한 생각들을 몰아서 해치우고 있다. 불안한 상황 속에서 그나마 내 힘으로 확실히 세워나갈 수 있는 부분들을 정리하기 위한 작업이었다. 이상한 답이 나올까봐 미뤄뒀던 생각들이 명확한 이름을 찾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나는 점점 뚜렷해진다.
전에 썼던 토막글들 속의 나는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건강해질 수 있는 사람이었다. 내가 지금 알아가고 있는 나의 모습들은 언제나 내 안에 살아있었는데, 내가 못됐던 거다. 제자리를 지킬 생각도 없던 사람들과, 보이지 않는 미래와, 눈에 잘 띄는 미운 내 모습들에 눈이 멀어 정작 지켜줘야 할 것에는 무심했던 시간들이었다. 그래도 이렇게 잘 견디어 주어서 다행인 나의 일부들. 앞으로도 갈 길이 멀지만, 지옥 같은 시간 속에서도 꿈만 같은 시간 속에서도 무언가를 배우며 자라서 더 많은 것을 눈에 담을 나의 일부들.
/ 최선의 노력이라도 결과가 항상 최선은 아닐 수 있다는 사실이, 간혹 그 결과가 최악일 수 있다는 사실이 두려웠다. 나의 최선이 모두의 최선은 아닐 수 있다는 사실이 버겁다.
그래도 널 믿어,라며 건네주는 말이 고맙다기보다 부담스러웠을 때, 만약 실패해도 그것이 전부가 아닐 거라는 걸 알아,라는 꼭지가 덧붙었다. 덕분에 다시 최선을 다할 수 있는 마음이 자랐다.
/ "그래도 시간은 흘러. 시간이 모든 걸 낫게 할 거야"
시간은 그냥 흐르는 것이 아닌데. 시간이 그냥 흐를 수는 있겠지만, 그냥 흐른 시간은 아무것도 낫게 하지 못한다.
/ 하고 싶은 것이 넘쳐서 정말 내가 다 해낼 수 있을까,하고 고민하는데 쓰이는 시간이 길다. 그냥 이 시간에 시작했으면 됐을 텐데. 그냥 해야겠다.
/ 일들은 밀리는데 뭔가 예감이 좋은 것이 불안하다. 할 일이 쌓이는 것이, 내 몫이 있다는 것이, 곧 바빠질 것 같은 예상이, 좋다면 변태인 건가?
/ 나는 좀 행복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아무 것도 아닌 것에 집착하는 그런 일 말고, 행복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 한심하고 비참하다 여겨질 때가 있다. 정말 중요한 거라고 철썩 같이 믿고 있던 것이, 정말, 말 그대로, 신기루처럼 사라져버리고 손에 남은 것은 모래뿐임을 깨달아버렸을 때. 신발 속으로 스며드는 모래먼지를 견디며 걸어왔지만 내 뒤엔 발자국 하나 남지 않았음을 알아차릴 때. 아무것도 아닌 것을 너무 애쓰며 견뎌버린 까닭도 모를 때.
/ 나는 나를 너무 일찍 규정 지었나 보다. 이렇게 생겨먹은 걸 어떡해, 하고 말하는 내 앞에서, 충분히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라고 이야기 하던 사람. 그 대단한 모습 앞에 나는 정말 너무 부끄러웠다.
/ 나는 충분히 행복한 하루하루를 살고 있는 거야. 살짝만 고개를 돌려도 나를 바라봐 주는 사람이 꼭 옆에 있는 아름다운 날들을 보내고 있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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