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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말, 아무 글

아무 말, 아무 글 : 7. 지난 말들과 오늘의 말

응_그래 2017. 7. 16. 13:51

건강한 생각을 유지한다는 건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그런 종류의 생각들은 스스로 떠오르는 것이 아니라 구태여 내가 붙잡고 있어야만 하는 것들이다그 사실이 한 동안 억울하게 느껴지곤 했다행복안정건강그러한 상태와 관계들이상적이라고 여겨지는 모든 것들은 그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노력해야 얻을 수 있는 것이라는 사실그리고 이러한 사실을 내 의지와 상관없이 떠올려야만 했던 순간들그 앞에서 나는 무척이나 무기력했다.


원서를 쓰고시험을 보고면접을 보고결과를 통보받았다여전히 불안정하지만 이상하리만치 나는 전에 없이 건강하다다르게 말하면 건강한 생각을 잘 붙잡고 있다불안한 상황에 대한 반작용 같은 걸까하고도 생각해봤지만 그런 것 치고는 너무 건강하다어쩌면 나는 정말 건강해진 걸지도 몰라여기까지 번진 생각이 어색하고 반가웠다.

 

취업을 준비하면서 지금껏 외면하고 쌓아뒀던스스로에 대한 생각들을 몰아서 해치우고 있다불안한 상황 속에서 그나마 내 힘으로 확실히 세워나갈 수 있는 부분들을 정리하기 위한 작업이었다이상한 답이 나올까봐 미뤄뒀던 생각들이 명확한 이름을 찾아가고 있다그리고 그 안에서 나는 점점 뚜렷해진다.


전에 썼던 토막글들 속의 나는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건강해질 수 있는 사람이었다내가 지금 알아가고 있는 나의 모습들은 언제나 내 안에 살아있었는데내가 못됐던 거다제자리를 지킬 생각도 없던 사람들과보이지 않는 미래와눈에 잘 띄는 미운 내 모습들에 눈이 멀어 정작 지켜줘야 할 것에는 무심했던 시간들이었다그래도 이렇게 잘 견디어 주어서 다행인 나의 일부들앞으로도 갈 길이 멀지만지옥 같은 시간 속에서도 꿈만 같은 시간 속에서도 무언가를 배우며 자라서 더 많은 것을 눈에 담을 나의 일부들.

 



최선의 노력이라도 결과가 항상 최선은 아닐 수 있다는 사실이간혹 그 결과가 최악일 수 있다는 사실이 두려웠다나의 최선이 모두의 최선은 아닐 수 있다는 사실이 버겁다.

그래도 널 믿어,라며 건네주는 말이 고맙다기보다 부담스러웠을 때만약 실패해도 그것이 전부가 아닐 거라는 걸 알아,라는 꼭지가 덧붙었다덕분에 다시 최선을 다할 수 있는 마음이 자랐다.

 

/ "그래도 시간은 흘러시간이 모든 걸 낫게 할 거야"

시간은 그냥 흐르는 것이 아닌데시간이 그냥 흐를 수는 있겠지만그냥 흐른 시간은 아무것도 낫게 하지 못한다.

 

하고 싶은 것이 넘쳐서 정말 내가 다 해낼 수 있을까,하고 고민하는데 쓰이는 시간이 길다그냥 이 시간에 시작했으면 됐을 텐데그냥 해야겠다.

 

일들은 밀리는데 뭔가 예감이 좋은 것이 불안하다할 일이 쌓이는 것이내 몫이 있다는 것이곧 바빠질 것 같은 예상이, 좋다면 변태인 건가?

 

나는 좀 행복하고 싶다고 생각했다이제는 아무 것도 아닌 것에 집착하는 그런 일 말고행복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한심하고 비참하다 여겨질 때가 있다정말 중요한 거라고 철썩 같이 믿고 있던 것이정말말 그대로신기루처럼 사라져버리고 손에 남은 것은 모래뿐임을 깨달아버렸을 때신발 속으로 스며드는 모래먼지를 견디며 걸어왔지만 내 뒤엔 발자국 하나 남지 않았음을 알아차릴 때아무것도 아닌 것을 너무 애쓰며 견뎌버린 까닭도 모를 때.

 

나는 나를 너무 일찍 규정 지었나 보다이렇게 생겨먹은 걸 어떡해하고 말하는 내 앞에서충분히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라고 이야기 하던 사람그 대단한 모습 앞에 나는 정말 너무 부끄러웠다.

 

나는 충분히 행복한 하루하루를 살고 있는 거야살짝만 고개를 돌려도 나를 바라봐 주는 사람이 꼭 옆에 있는 아름다운 날들을 보내고 있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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