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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말, 아무 글 : 10. 그때 놓치지 말고 꼭 오면 돼

응_그래 2017. 7. 18. 15:28

어쩌면 나는 지금껏 너무 행복하게 살아버려서, 하고 싶은 일은 정말 다 하고 살아버려서 앞을 가로막는 무언가가 이렇게 버겁게만 느껴지는 건 아닐까. 요즘 들어 이런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늘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될 것 같지 않았던 일들을 벌여도 항상 기대보다 좋은 결과를 얻어 왔다. 그 과정에는 나를 북돋아주고 도와주는, 존경스러운 사람들이 함께했고 그들은 좋은 결과보다 훨씬 값진 인연으로 지금껏 이어져오고 있다. 물론 항상 부족한 나였지만 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배울 것 투성이였고, 다행히 나의 무지를 다그치기 보다는 친절히 일러주는 사람들이 곁에 있어서 주눅들지 않고 쑥쑥 클 수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지금껏 만나온 사람들과 조금은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서 답답함을 느꼈고 나와 다른 눈으로 세상을 읽는 사람들의 말들이 슬프게 들렸다. 마치 내가 잘못된 곳에 앉아있는 것 같았다.

 

나는 어떤 사회인이 되고 싶었던 걸까. 일을 시작한다고 모두 어른이 되는 건 아니겠지만, 나는 어른이라면 자신이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위해 불편함도, 불만족도 참아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취업을 준비하기 시작하면서는 될 것 같은 일, 안정적일 것 같은 일들을 고려하기 시작했다. 지금껏 하고 싶은 대로 다 했으니까,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버리면 그건 어른이 아니니까, 이런 생각이 가장 컸던 것 같다. 나는 안정과 인정이 어른이라면 응당 추구해야하는 가치라고 생각했나보다. 그리고 그것을 사회로부터 강요당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억울해하면서도, 이내 체화하기 위해 노력했다.

 

새로 시작한 일에 실망했다기보다, 그 일이 나에게 위험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곳에 있으면 내가 살고 싶은 세상과 계속해서 멀어지기만 할 것 같았고, 지금을 살고 있는 내가 추구하는 꿈이 변할 것만 같았다. 다시는 하고 싶은 일에 가까이 다가갈 수 없을 것 같았다. 현실이 내 지향을 막게 될 것 같다기보다, 다시는 그런 꿈 자체를 꾸지 않는 내가 될 것 같다는 느낌. 그게 너무 무서웠다.

 

어쩌면 지금까지 하고 싶은 것을 했을 뿐 아니라, 큰 실패 없이 어느 정도 할 수 있었던 건 그 일들이 정말 내 마음을 울리는 일들이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더 큰 가치를 추구하기 위해 다른 것을 포기하는 것이 어른의 삶이라면, 나는 내 마음을 울리는가치를 위해 안정과 인정을 포기해야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정말 우스웠던 건, 내가 일을 그만두고 싶다고, 정말 하고 싶은 일이 있다고 이야기하며 내가 생각하는 어른들에게 고민을 물었을 때, 나에게 안정과 인정을 추구하라고 이야기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는 사실이다. 나는 그저 겁이 났을 뿐이었던 거다. 안정적이지 않은 것이, 나이에 걸맞은 인정을 받지 못하는 것이 무서웠을 뿐이었던 거다. 사회가 나에게 안정과 인정을 강요한 적은 없었다. 나를 옥죈 것은 그냥 나였다.

 

출근한지 이틀 만에 그 자리가 나에게 맞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고 2주를 버티다가 오늘 퇴사원을 작성했다. 그리고 좋은 기회덕분에 설레는 새 출발을 준비하고 있다. 설렌다는 느낌이 너무 오랜만이라서, 잘 할 수 있을까 걱정되는 앞날이 정말 간만이라서 참 신나고 행복하다. 무엇보다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삶의 충만한 기운이 좋다. 그리고 그런 느낌을 주는 앞날이 아직 펼쳐지지 않은 채로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이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독일에서 유학 중인 언니에게 언니가 그곳에 머무르는 동안에 꼭 한 번은 여행을 가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다. 언니는, 꼭 지금이 아니어도 된다, 올 기회가 분명 올 거고 그때 놓치지 말고 꼭 오면 된다고, 이야기했다. 무심코 한 말이었겠지만, 그 말이 나에게는 큰 용기가 되었다.

 

무서움이 가리고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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