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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말, 아무 글 : 11. 꼭 하나를 정해야한다면

응_그래 2017. 7. 28. 20:53

언젠가 그런 생각을 했었다. 하고 싶은 일이라면 다른 사람, 특히 부모님의 의견은 묻지 않고 언제든 달려드는 것이 어쩌면 효도에 가깝지는 않을 수 있겠구나 하고. 이런 나는 이기적인걸까. 내가 대학교 합격 소식을 들은 날 아버지는 술을 거나하게 드시고는 나를 안으며, 앞으로 하고 싶은 거 마음껏 해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정말 내가 대학에 가서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는 모습을 본 아버지가 약간은 그때의 말을 후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내가 그런 이십대가 되어버린 것이 그 한순간 아버지가 나에게 건넨 말때문만은 아니다. 나는 그런 아이로 길러졌다. 항상 하고 싶은 일이 넘쳤다. 좋은 부모님을 둔 덕분에 하고 싶은 일에 주저하지 않는 아이로 자랄 수 있었다.

 

점점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는 많은 것을 포기해야하는 거구나, 하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일로서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을 설득해야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며 행복할 수 있음을 증명해야하고, 하고 싶은 일이기 때문에 다른 일을 할 때보다 덜 투덜거려야 한다. 더구나 이건 나의 문제이면서 이상하게도 많은 사람들을 고민에 빠트리는 요소이기도 한데, 하고 싶은 일은 가난하다. 아직도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하고 싶은 일은 가난하고 불안정하다. 어쩌면 사람들은 가난과 불안정에 매력을 느끼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렇다. 묘하다.

 

최근에 내가 좋은 어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서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 내가 한참 이것저것을 좋아하는 나의 성질이 나의 커리어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다는 하소연을 쏟아낸 뒤였다. 그 분은, 그래도 하나를 정할 필요는 있어요, 라고 말씀하셨다. 집에 오는 길에 그 분에게서 들은 말들을 곰곰이 되짚어보는데 약간은 서글퍼졌다. 결국 나는, 나 같은 모양새의 사람은, 인정받지 못하는 걸까. 하지만 잘 생각해보니 한 가지를 정해야한다는 말이 나의 모습을 부정하는 말은 아니었다. 많은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한 번에 한 가지 일만 할 수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으니까, 일은 일로서 생각해야하니까. 맞는 말이었다. 한 가지를 정해야했다.

 

꼭 하나를 정해야한다면, 나는 무엇을 택해야할까? 그때부터 이런 고민을 시작했다. 내 선택의 기준은 어디에 있을까? 대체 나는 어떤 부분이 만족되었을 때 행복할 수 있을까? 그러면서 동시에 과거에 내가 충만함을 느꼈던 시간들을 떠올리게 되었다. 나를 행복하게 했던 일들에는 어떤 공통점이 있는지, 내가 앞으로 살고 싶은 삶의 방향은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물론 취업준비를 하면서 이런 고민을 수도 없이 계속했지만, 그때와는 약간 달랐다. 나는 취업준비를 하면서도 그 일이 나의 어떤, 업이 될 것이라는 생각은 잘 하지 못했던 것 같다. 적어도 한 가지의 일을 몇 년이고 계속해야한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전혀 하지 못했다. 그래서 전에 세워본 적 없던 기준들로 앞날을 설계했고, 그랬기 때문에 당연히 취업을 한 뒤에 전혀 설레지도, 신나지도, 행복하지도 못했던 것 같다.

 

취업을 준비할 때 내가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 일과 잘 될 것 같은 일을 재고 따졌다면, 내가 다시 찾은 기준은 그것과 달랐다. 나를 지금껏 행복하게 만들어준 기억들의 공통점은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생겨먹은 대로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데 기여하는 일이라는 점이었다. 약간은 자기 마음대로 선택하며 살아도, 하고 싶은 일에 주저하지 않아도, 있는 그대로 인정받고 살 수 있는 그런 곳. 내가 살고 싶은 세상이자 내가 만들고 싶은 세상이었다. 그리고 그런 세상에서 살고 싶은 사람들과 만날 수 있는 일을 하며 즐거웠다. 그런데 취업을 준비하면서 나 스스로마저 그렇게 살지 못했다. 그래서 괴로웠다. 힘들었고, 무기력했다. 그 이전에 정말 행복했던 순간들을 지나왔으면서도, 그런 삶을 살겠다는 생각이나 그런 삶을 살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할지는 왜 고민하지 못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지만, 한편으로는 잘 알고 있다. 왜 그랬는지.

 

큰 업적을 이룬 많은 위인들은 공통적으로,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그냥 해라, 하고 이야기한다. 그러지 않는 핑계는 많겠지만 그래도 하라고 이야기한다. 물론 내가 무슨 업적을 이루고 싶은 사람은 아니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행복해지는 길이라는 사실은 안다. 그래서 제대로 해보려고 한다. 많이 설레고, 무섭다. 불안정이 무서운 것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을 잘 하지 못할까봐 그게 무섭다. 좋은 무서움이라고 생각한다.

 

어서 빨리 첫 출근일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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